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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천(我泉)미술관의 개관에 부쳐


 
김 광 명(숭실대 교수, 예술철학)
 
미술애호가이자 광주광역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유수택(柳秀澤)씨가 자신의 소장품 및 주변 작가들의 도움, 그리고 사재(私財)를 내놓아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茅山里)에 아천미술관을 개관하였다. 동으로 죽봉산, 북으로 웅봉 그리고 멀리 호산이 자리한, 잔잔하면서도 포근하며 안정감을 주는, 주변 경관이 미술관으로서의 위치라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데 편안함을 느끼는 곳에 들어서 있다. 나름대로 지세(地勢)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인상을 준다.

설립자는 어떤 취지에서 이 시대에 이 곳에 미술관을 세웠을까? 필자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그의 뜻이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천미술관의 '我泉'의 이름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물론 '나의 샘 혹은 나의 우물'의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일까? 일찍이 우리가 철학의 아버지라 부르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 라고 말했다. 물은 모나지 않으며 만물을 감싸 안고 흐른다. 샘은 물의 발원지이다. 그리고 나의 샘은 나의 발원지, 곧 나의 고향이요, 뿌리이며 근원이다. 그것은 곧 모태와도 같다. 어떤 철학자는 오늘날을 가리켜 고향상실의 시대라고 지적하며 본래적인 것을 잃어버린 데 대해 낙담하고 절망하며 인간의 실존적 의미를 물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노숙의 시대요, 유목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설립자는 돌아갈 곳의 의미를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무엇을 통해 근원으로 돌아갈 수 있는가? 바로 예술문화를 통해서일 것이다. 여기엔 고향애 혹은 향토애, 그리고 문화적 향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다. 특히 이 터는 문화 유씨(文化 柳氏) 일가(夏亭公派)가 조선조 오백 여년에 걸쳐 대대로 뿌리를 지켜 온 향리이다. 주변 경관의 빼어남과 시적 정취를 만끽하고자 지어놓은 영팔정(詠八亭)이 그 역사적 유래를 머금고 서 있다. 있는 바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그 의미가 부여되고 서로 교호작용을 하는 현장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연 경관과 그 안에 사는 인간의 상보적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런 관계가 좁은 울타리를 넘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문화적 환경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술관 마당 한 켠에 서 있는 돌에 새겨진 "유민유허(遺民遺墟)"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온갖 풍파와 시련에도 불구하고 백성은 그 터 위에 살아 남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민족의 아픔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는 듯하여 한참 동안을 그 앞에 서서 음미해 본다. 앞으로 이 깊은 뜻을 아천미술관이 현실과 부대끼면서 사람의 삶과 더불어 잘 지키고 새겨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미적으로 승화될 때에 더욱 빛이 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숭고한 이념이 수단이나 도구에 그치는 경우에는 늘 몰락해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로지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할 때에 문화적으로 고양되고 미적으로 승화될 것이다.

우리가 미술관에 들어설 때의 느낌은 이런 곳에 이런 미술관이 있구나 하는 의아함이다. 어떤 특정 목적이나 의도를 떠나서 오랜 세월 동안 자연스레 형성된 마을에 들어선 미술관의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인위적인 의도가 가능한 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선 전혀 관람객을 고려하지 않은 동네 미술관이기도 하다.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일부러 이 곳을 찾아 올 정도의 의미가 있어야 겠다. 그러기에 이상적이지만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볼 때, 잘 운영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거니와 주변의 애정어린 관심과 배려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이낯선 곳에 들어 선 미술관을 생각할 적에 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조지아 오키프(Geogia O'Keeffe)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녀는 뉴멕시코의 사막으로 떠나 은둔 생활을 시작했지만, 뉴멕시코의 황량한 사막은 그녀의 정착으로 인해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거기에 문을 연‘조지아 오키프 미술관’은 문화예술적 명소가 되었다. 아천미술관도 이러한 명소가 되기 위한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인적·물적 자원을 토대로 이러한 가능성은 우리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모든 여건이 현재는 진행형이다. 1층 상설전시실, 2층 기획전시실이 먼저 문을 열었으며, 자료실과 세미나실이 더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문화적 재창조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다목적적인 공간이 더 제공되어야 할 것이며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예술의 마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번 개관과 더불어 대도시 중심의 문화편중 현상을 극복하고 개성과 특성을 지향하여 미래의 미술문화를 위한 뜻깊은 출발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우선 전시기획 및 자료선정은 학예실장으로 수고하는 임은순 선생(호남대 겸임교수)이 담당하고 있지만, 유능한 인적 자원이 더 많이 보강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란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이며, 이처럼 문화창달에 기여하려는 설립자의 숭고한 뜻이 이 지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더 널리 퍼지길 기대해본다. 또한 지역 사람들로 하여금 문화적 현장감을 실제로 향수하게 하며, 손색없는 작품을 더욱 많이 접하게 하는 귀한 기회를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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